글
전세계적으로 신기나 신물은 거의 다 세가지씩 존재하는 것 같다.
아마도 3이라는 숫자가 완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인 것 같다.
역사서중에 '고기(古記)'를 보니 이런 구절이 있다.
"옛날에 환인(桓因; 제석帝釋을말함)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란 이가 있었는데 자주 천하를 차지할 뜻을 두어 사람이 사는 세상을 탐내고 있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산(三位太伯山)을 내려다보니 인간들을 널리 이롭게 해 줄 만했다. 이에 환인은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환웅(桓雄)에게 주어 인간(人間)의 세계를 다스리게 했다. 환웅(桓雄)은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마루턱(곧 태백산은 지금의 묘향산)에 있는 신단수(神檀樹) 밑에 내려왔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 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고 이른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壽命), 질병(疾病), 형벌(刑罰), 선악(善惡) 등을 주관하고, 모든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敎化)했다...(후략)"
단군신화에도 분명히 보물이 세가지가 나온다.
같은 종류의 보물만 세 개인 것은 전세계를 통틀어봐도 상당히 드문 경우이다.
여기 등장하는 천부인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알아볼 길이 조금은 막막한 고로 해서 다음으로 넘어가자.
고구려와 백제, 고려와 조선의 경우에는 역사서에 신물이 나와있는 경우를 찾기 힘듭니다만, 신라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나와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에는 세가지 보물이 있는데 그것은 '황룡사의 장륙존상, 황룡사 9층탑, 진평왕의 천사옥대'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천사옥대라는건 옥으로 만든 띠를 말한다.
삼국유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고려왕이 신라를 칠 계획을 하다가 말했다.
"신라에는 세 가지 보배가 있어 침범할 수 없다고 하니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황룡사(皇龍寺) 장륙존상(丈六尊像)과 구층탑(九層塔), 그리고 진평왕(眞平王)의 천사옥대(天賜玉帶)입니다."
이 말을 듣고 고려왕은 그 침범할 계획을 그만두었다. 주나라에 구정(九鼎)이 있어서 초나라 사람이 감히 주나라를 엿보지 못했다고 하니 이와 같은 따위일 것이다.
세가지 보물중에 두개가 황룡사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신라에서 황룡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룡사에 대한 것은 삼국유사 권3탑상 제4에 각각<황룡사장륙>, <황룡사구층탑>에 자세하게 나와있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장륙(丈六)'이란 1장 6척 즉 1길 6자의 길이를 말한다. 1장은 10척이 되므로 모두 16척의 높이가 된다. 1척은 시대에 따라 그 길이가 달라지지만 통상 30cm 가량 되며, 이 시기에는 25cm 정도로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4m 내지 4.8m 정도 높이의 불상이 되는 것인데 불상을 이와 같이 크게 만든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부처가 위대한 분이라 여겼기 때문에 그랬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불상은 진흥왕 때 조성된 것이었는데,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지금 경주의 황룡사 터의 금당 자리에 장륙상을 세워둔 기단석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황룡사의 구층탑도 선덕여왕 때 세워진 이래 여러 차례를 화재를 입고 수축하고를 거듭했는데 몽고 침입기에 최종적으로 불타버리고는 다시 세워지지 못했다. 다만 지금 경주의 황룡사 터를 통해서 구층탑의 규모를 추측해 줄 뿐이다.
해동(海東)의 명현(名賢) 안홍(安弘)이 지은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에는 이런 말이 있다.
"신라 제 27대에는 여자가 임금이 되니 비록 올바른 도리는 있어도 위엄이 없어서 구한(九韓)이 침범하는 것이다. 만일 대궐 남쪽 황룡사(皇龍寺)에 구층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가 침범하는 재앙을 진압할 수 있을 것이다.
제1층은 일본(日本), 2층은 중화(中華), 3층은 오월(吳越), 제4층은 탁라(托羅), 제5층은 응유(鷹遊), 제6층은 말갈(靺鞨), 제7층은 거란(契丹), 제8층은 여진(女眞), 제9층은 예맥(穢貊)을 진압시킨다."
황룡사의 장륙상과 구층탑은 불교를 통해 국가의 안녕을 빌고자 하는 동기에서 세워졌을 것이다. 즉 불교의 호국적 역할에 대한 기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진평왕의 옥띠가 이들과 함께 신라의 삼보로 여겨졌다는 데서 이 옥띠 역시 국가의 안녕을 염원하는 데서 만들어진 것이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국가적 보물이란 틀림없이 국가의 최고의 가치를 상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인데, 그 최고의 가치란 다름 아닌 국가의 안녕, 번영과 태평일 것이다.
진평왕의 옥띠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자세하게 전해지지는 않지만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출품되는 다른 띠를 볼때 상당히 화려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천마총 출토 금제과대 허리띠>
하늘에서 천사를 시켜 왕에게 내렸기에 신성함을 부여받고 있으며, 이 옥띠를 하고 각종 제사를 주관했다고 하니 신라왕실의 상징도 된다. 옥띠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의 태조에게 바쳤다고 전해지고 있다.
여기까지 해서 본인의 짧은 지식과 역사서를 보면서 어설프게나마 글을 남겼다.
우리나라의 5천년 역사에 비록 이것밖에 없겠느냐만은, 본인이 찾아낸 것은 이정도이다.
좀 더 찾게 되면 다시 글을 올리겠다.
P.S -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관심을 가져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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