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이 에스파냐에서 알프스를 건너 이탈리아로 쳐들어간 후에 칸나에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런 대목은 누구나 한번쯤은 다 들어봤을 내용일 것이다. 조금 더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어떤 식으로 이겼는지에 대해서도 많이 봤을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얘기하려는 것은 그 이긴 내용에 관해서 약간의 궁금증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지겹더라도 서론부터 시작해야겠다.

  서구의 사관학교에서라면 반드시 가르친다고 하는 칸나에 전투. 그만큼 전술이나 용병술이 빛을 발하였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씨가 쓴 로마인 이야기 2권 - 한니발 전쟁을 참고하면 당시의 병사에 대한 비교가 나와있다.

로마 시민병 - 보병 : 40,000명
                       기병 :   2,400명         합계 42,400명
동맹국 병사 - 보병 : 40,000명
                       기병 :   4,800명         합계 44,800명
                                                        전체 87,200명

한니발 휘하 - 보병 : 20,000명
                       기병 :   6,000명         합계 26,000명
갈리아 용병 - 보병 : 20,000명
                       기병 :   4,000명         합계 24,000명
                                                        전체 50,000명

  이 수치는 대부분의 역사서적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보병에서 로마군은 2배의 전력을 과시하지만 기병에서는 약간 적다. 하지만 보병이 잘 버텨주면 충분한 승산이 있을거라고 로마는 생각한 것 같다.
  당시 로마의 지휘관은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테렌티우스 바로. 카르타고의 지휘관은 한니발 바르카스.
  사람들은 한니발이 아주 뛰어난 명장이라서 이름있는 장군들이 상대를 해도 다 이겼다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한니발이 명장이라는데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이겼다고 판단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로마에서는 한니발에게 하루빨리 반격을 가하고 싶어했고, 한니발은 로마동맹의 붕괴를 위해서라도 커다란 규모의 회전을 통한 승리를 원했을 것이다.
  기원전 216년에 로마는 한니발을 찾아서 아피아 가도를 따라 카푸아, 베네벤토를 거쳐서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지방의 칸나에까지 접근하였다. 그곳에서 로마군을 기다리고 있던 한니발은 언덕에 진을 치고 상대를 주시하였다. 한니발과 10km의 거리를 마주본 언덕에 로마군 역시 진을 치고 양군의 대치가 시작되었다.
  몇번의 작은 소규모 전투에서 승리한 로마군은 오판토 강 연안까지 진영을 전진시켰고, 한니발 역시 같은 쪽으로 진영을 이동시켰다. 이제 얼마 후면 전쟁사에서 으뜸으로 친다는 칸나에에서의 대결이 벌어질 것이다.

  기원전 216년 8월 2일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로마군은 경무장 보병을 선두에 세우고 바로 뒤에는 로마의 주축이라는 중무장보병을 세웠다. 그리고 좌우 양쪽으로 기마병을 세웠다. 이것은 적보다 압도적인 보병으로 중앙을 돌파해서 상대를 와해시킨다는 전술이지만, 대신에 우익의 기마병들은 좁은 지역에서 2,400명으로 적의 기마병을 상대해야 하는 불리함을 안게 되었다.
  반면 한니발은 비정규군인 갈리아 보병을 선두에 세우지만 중앙이 볼록한 활모양의 진형으로 세우고, 그 뒤를 한니발의 정예인 중무장 보병이 채웠다. 그리고 역시 좌우로 기마병을 늘어세웠지만 여기에서 로마와 한니발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본인이 참고한 서적은 3개이다. 그리고 영국 B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까지도 참고하였다. 그런데 모든 자료가 유일하게 어긋나는 곳이 바로 기마병의 활약에 관한 부분이다.
  시오노 나나미씨는 로마의 우기병 2,400명이 한니발의 6,000기병과 싸우다 와해되고, 곧바로 로마의 좌기병 4,800명도 한니발의 4,000기병에게 패했다고 서술하였다. BBC의 다큐멘터리는 로마의 우기병 2,400은 한니발의 5,000기병과 상대하였고, 로마의 좌기병은 비슷한 숫자인 5,000을 상대하였다고 한다.
  본인이 이것저것 생각을 해봤을때 확실히 BBC쪽이 들어맞을 것 같다.

  한니발이 고용한 누미디아의 기병은 확실히 지중해에서는 최강이라 불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로마의 기병을 쉽게 압도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
  모든 조건이 비슷한 경우라면 확실히 장비가 좋거나 숫자가 많은 쪽이 유리하다. 누미디아의 기병이 강하다면 로마의 기병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들의 훈련방식을 답습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미군의 훈련체계를 그대로 따라하지 않았던가.
  그럼 누미디아의 말이 로마의 말보다 더 훌륭한가? 그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누미디아는 말타기가 생활화되고 훈련이 체계적이어서 강한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로마 역시 훈련방식은 누미디아를 많이 본받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타국의 문명이나 방식에 대해서 배타적은 아니었으니까.

  더 쉽게 예를 들어보자. 다들 스타크래프트를 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노업 마린과 공1업 마린 한부대가 서로 어택땅으로 달려들어 싸운다고 가정하자. 물론 공1업 마린이 이기지만 3~4기만이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바로 누미디아와 로마의 기병은 이 차이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압도적으로 이기지 못한다. 게다가 스타에서는 가까스로 살아남아도 똑같이 싸울 수 있지만, 실전에서는 절대 그럴 수 없다. 난 누미디아가 풀업마린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본인의 생각은 이렇다.
  로마의 우기병 2,400을 맞아서 한니발의 5,000기병은 전력으로 싸운다. 대신에 로마의 좌기병 4,800을 상대하는 한니발의 기병은 그들이 보병을 지원하러 가지 못하게 최대한 막으면서 버틴다. 우기병은 오판토 강과 보병 사이의 협소한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기 때문에 퇴로가 없다. 좌기병은 비교적 넓은 곳이었기 때문에 보병을 지원할 수 있지만 그것을 최대한 저지한다. 그리고 우기병은 2배의 병력을 맞이해서 순식간에 전멸하였다. 어쨌든 노업마린 한부대로 공1업마린 두부대를 상대했으니까 순식간일 것이다.
  지휘관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말을 버리고 중무장 보병들 사이에 끼어들어서 전투를 계속하였다. 여기서 승리한 한니발 기병은 로마군 보병의 뒤를 그대로 가로질러서 로마의 좌기병을 덮쳐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나마 숫자를 많이 두었던 4,800명의 로마 좌기병은 또다시 두배의 기병을 상대하게 된다. 이것이 한니발이 노린 병력의 우위가 아닐까? 좌기병은 그대로 뒤로 후퇴하였고 1만명의 한니발 기병은 그들을 추격하다 다시 돌아와서 로마 보병의 뒤를 덮친다.
  그리고 한니발의 비정규군인 갈리아보병이 좌우로 후퇴해서 로마 보병의 양쪽을 막아섰다. 로마의 대군은 적은 수의 한니발군에게 멋지게 포위당해버렸다. 아무리 숫자가 우세하다 하여도 밀집대형으로 상대를 뚫지 못하면 포위되었을때에 불리해진다. 가운데 있는 병사는 싸움을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숫자가 비교적 적더라도, 게다가 기병까지 가세하였다면 승리는 결판나게 된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를 비롯해 수많은 로마의 지도층 인사들이 전사했다. 당시 로마는 지도층들도 전투에 참여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자,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지도 모른다. 여태껏 우리가 알고 있는것과 전혀 다를바가 없지 않느냐고?
  그렇다. 하지만 약간은 다르다.
  이 전투가 전세계의 사관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전술의 묘미라고 한다면, 과연 어떤 전술인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것을 기초로 한다면 상대의 중심세력을 무력화시킨 후에 포위섬멸하는 것만을 배울것이다. 본인은 여기에 '부분적 군사력의 우위'를 추가시키고 싶다.
  총 병사가 적의 절반보다 약간 넘는 정도였지만, 한니발은 최대한의 전술을 펼쳐서 그 병사력의 열세를 극복하였다. 기병대를 나누어서 한쪽씩 각개격파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밀집대형에 대해 넓게 벌려서 포위하여 적은 수로도 많은 병사를 상대하는데 지장이 없게 한 것.  그 덕분에 한니발의 기병은 큰 피해없이 하나하나 로마기병을 쓰러뜨려갔고, 많은 수의 보병을 상대로도 훌륭하게 대처하지 않았던가.

  아마 이런 점이 한니발을 고대의 명장, 나아가서는 역사 전체에서 손꼽히는 명장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훌륭하고 후세에까지 이름이 남는 장군은 큰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이겼는가까지 생각하면, 그리고 단순하게 이래서 이겼다라고 하기 전에 그 작전이 왜 유리했을지를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생각이 넓게 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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