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천왕

읽을거리/What? 2004. 1. 2. 16:53

 

  치우천왕에 대한 발췌문.

  우리 한(桓)의 건국은 이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이었는데 한 신이 있어 사백력(斯白力:지금의 시베리아)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는 만물을 낳았다.
오래 오래 살면서 늘 쾌락을 즐겼으니 지극한 기(氣)를 타고 노닐고 그 묘함은 저절로 기꺼웠다.
모습없이 볼 수 있고, 함이 없으면서 모두 이루고 말 없으면서 다 행하였다.

  어느 날인가 동남동녀 800 이 흑수(黑水: 흑룡강을 말하며 중국말로는 살합연오라, 러시아말로는 아므르) 백산(白山:백두산 또는 중국의 태백산)의땅에 내려왔는데 이에 한님(桓因)은 또한 감군(監郡:중생을 돌보는 직책)으로서 천계에 계시면서 돌을 쳐 불을 일으켜서 날음식을 익혀 먹는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셨다.
  이를 한국(桓國)이라 하고 그를 가리켜 천제한님(天帝桓因)이라고 불렀다. 또한 안파견(安巴堅:지금의 아버지로 고대에는 국왕을 아버지라 불렀다 한다.)이라고도 했다.
  한님은 일곱 대를 전했는데 그 연대는 알 수가 없다. 뒤에 한웅(桓雄)씨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天神)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에 내려왔다.

  사람 모이는 곳을 천평에 마련하고 그곳을 청구(靑邱)로 정했다. 천부의 징표를 지니시고 다섯 가지 일을 주관하시며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를 베푸시니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였더라.
  또 신시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이라 불렀다. 삼칠일을 택하여 천신께 제사지내고 밖의 물건을 꺼리고 근신하며, 문을 걸어 잠그사 스스로 주분을 외우며 몸을 닦아 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더라.
  약을 드시고 신선이 되시니, 팔괘를 그으사 올 것을 알며 상을 잡으사 신을 움직였다.

  또 여러 영험스러운 이들과 뭇철인들이 보살피도록 하시더니 웅씨(곰이라하나 옛날의 곰이라함은 신을 뜻하는 말이다. 풀어쓰면 ㄱ.ㅁ이라한다. 일본에서는 신을 '가미'라 한다)의 여인을 거두어 아내로 삼으시고 혼인의 예법을 정하매, 짐승 가죽으로써 폐물을 삼았다.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고 시장을 열어 교환하도록 하니, 온 세상이 조공을 바치며 새와 짐승도 덩달아 춤추었다. 뒷날 사람들은 그를 지상 최고의 신이라고 받들어 세세토록 제사가 끊임이 없었다.

  신시의 말기에 치우천왕(14세 자오지한웅)이 있어 청구를 개척하여 넓혔으며, 18세를 전하여 1565년을 누리더라.
  뒤에 신인왕검께서 불함산의 박달나무터에 내려오셨다. 그는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짐을 겸하여 갗추었으니 이에 능히 조칙을 받들어 하늘의 뜻을 이었으니 나라를 세운 뜻과 법은 높고 넓고 강하고 열렬하였다. 이에 구한의 백성들이 마음 깊이 복종하여 그를 받들어 천제의 화신이라 하며 그를 제왕으로 모셨다.
그가 곧 단군왕검으로 신시로부터 전해지던 오랜 법을 되찾고 서울을 아사달(백두산 또는 완달산)에 설치하여 나라를 열었으니 조선이라고 불렀다.

...(중략)...

  뒤에 갈고한웅(10세 한웅)이 나셔서 염제신농(중국의 삼황가운데 두번째 황제. 농사, 의약의 시조라 한다. B.C 3218-3078)의 나라와 땅의 경계를 정하였다.
  또 몇 대를 지나 자오지한웅(14세 한웅. 치우천왕이라고도 한다)이 나셨는데, 귀신같은 용맹이 뛰어 났으니 동두철액을 하고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듯 온누리를 다스릴 수 있었고, 광석을 캐고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만드니 천하가 모두 크게 그를 두려워 하였다.
세상에서는 치우천왕이라 불렀으니 치우란 속된 말로 우뢰와 비가 크게 와서 산과 강을 크게 바꾼다는 뜻을 가진다.

  치우천왕께서 염제신농의 나라가 쇠함을 보고 마침내 큰 뜻을 세워 여러 차례 천병을 서쪽으로 일으켰다. 또 색도(산동성 임치현 동남쪽 여수의 남쪽에 있는 성명)로 부터 병사를 진격시켜 회대의 사이에 웅거하였다.
  황제 헌원(중국삼황의 하나로"황제가 청구에 와서 풍산을 지나다가 자부선생을 만나 삼황내문을 받아 만신을 부르고 불렀다"라고 중국사서에 기록되 있으니 그또한 동이족임을 증명하는 말이다)이 일어나자 즉시 탁록의 벌판으로 나아가서 황제헌원을 사로잡아(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치우가 졌다 하고, 북애자의 규원사화나 한단고기 삼성기에서는 치우의 승리라 하고 있음) 신하로 삼고, 뒤에 오장군을 보내 서쪽으로 계곡고신을 쳐 공을 세우게 하더라.

  한 때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 서로 서로 대치하고 있었으니 탁의 북쪽에 대효(아마도 요임금 즉 제요효당을 가리키는것 같다.)가 있었고 동쪽엔 창힐(문자의 조상이라 알려진 중국사의 전설적인 인물. 황제의 신하로서 새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지었다 한다.)이 있었으며 서쪽엔 황제헌원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군대를 가지고 승리를 차지해 보려고 했으나 아무도 이루지 못하였다.
  처음 황제 헌원이 치우보다 일어남이 조금 늦더니 싸움마다 이로움이 없자, 대효에 의존코자 했으나 이룰 수 없었고 또 창힐에 의존코자 했으나 그것도 뜻대로 안되었으니 이는 두 나라가 모두 치우의 무리였기 때문이다.
대효는 일찌기 간지의 술을 배웠고 창힐은 부도의 글을 배웠다. 당시의 제후들이 신하로서 섬기지 않는 자가 없음이 이 때문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말 하기를,

  "제후가 모두 다 와서 복종하여 따랐기 때문에 치우가 극히 횡포 하였으나 천하에 능히 이를 벌할 자가 없을 때 헌원이 섭정했다.
  치우의 형제가 81인이 있었는데, 모두 몸은 짐승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며,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된 이마를 가지고 모래를 먹으며 오구장, 도극, 태노를 만드니 그위세가 천하에 떨쳐졌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라고 했다.

 

  -부연설명
치우천왕에 관한 기록은 정식으로 인정받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근거없는 야사에 가깝지요.
그냥 그런 이야기도 있구나 하는 정도의 흥미꺼리로만 읽고 넘기기 바랍니다. 어디 가서 이게 진짜라고 그러심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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